좋은 배우 장근석

장근석밀착취재

아름다운 안해 2008. 3. 28. 20:55
황진이 첫사랑 장근석, 내 스무 살의 비망록
“집안 사업인 양어장에서 보낸 유년기가 감성을, 이른 연예 활동은 ‘애어른’이란 수식어가 건네는 조숙함을 동반했다.” 배우라는 이름 아래,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는 스무 살 장근석에겐 여러 해석이 필요할 듯하다.
황진이의 첫 남자’로 본격 성인 연기 신호탄을 쏜 장근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학교 때 연예계에 진출, CF 스타로 떠올랐던 장근석. 그러나 일찍 출발한 과정 안에는 행운과 노력, 방황이 섞여 있었다.
주변에서 장근석에 대해 얘기할 때면, ‘애어른’이란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도 알고 있을까. 연예판에 뛰어든 10대 시절, 애 취급을 받기 싫어 어른 말투 등을 모방했다는 데서 일종의 ‘처세’가 읽히는 대목. 요즘엔 스무 살 그 나이대의 또래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그지만, 그래도 눈을 뜨면 20대 후반의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훌쩍 뛰어넘은 그 세월이면 ‘배우 수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을 것이란 기대다.

‘스무 살 장근석’을 결정짓는 ‘물건’ 하나를 꼽아달라는 말에 ‘자동차’를 떠올렸고, 배우의 길을 따라 조급하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정상 주행’을 하겠다고 했다. 다소 저음의 차분한 목소리는 CF나 시트콤 속 ‘팡팡’거리던 느낌의 장근석과 거리를 뒀지만, 요즘 유행하는 핑크색 휴대폰이 그의 ‘스무 살’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황진이의 첫 남자’를 마친 소감은? 지금도 시청자 게시판에 접속하는 게 일과고 방영 시간만 되면 TV 앞에 앉아요. 정이 많이 남죠. 제겐 엄청 큰 기회였다고 할 수 있고, 드라마 이후로 어디 가면 ‘배우’라는 꼬리표를 붙여줘서 감사하죠.

배우라는 말 들으면 솔직히 어떤가요? 기분은 들뜨는데, 좀 부끄럽긴 하죠. 테크닉도 그렇고, 여전히 부족하니까요. 감독님께 “테크닉은 있는데,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심각했죠. 그때부터 지원이 누나가 정말 첫사랑이라고 자기 암시를 했어요. 은호 도령 역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 덕분이 아닐까요.

은호 역할을 마치면서 했던, 화제가 됐던 그 멘트가 기억나네요. “지원이 누나와 진한 사랑의 감정이 솟아올랐고, 키스신 때 몰입하다보니, 촬영 후에도 그 감정이 식지 않는다”던…. 감정선의 연장이겠지만, 연기하다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하하. 연하와 연상에 대한 핸디캡은 두지 않아요. 전 괜찮은데, 지원이 누나가 싫어할 걸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재밌어요. 제가 출연한 마지막 방송 보고 나서 지원이 누나에게 문자를 보낸 걸요.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고요. 밥도 많이 사주고, 누나에게 배운 게 많아요. 연기 집중력이나 스태프를 챙기는 모습 등등. 아, 이런 말 하니까 보고 싶네요.

그럼 지원이 누나랑 핑크빛 소문 만들어보는 건? 잘 되면 좋겠죠(웃음). 모든 만남이 그렇듯 가능성은 50 대 50이니까(웃음). 그래도 이미 누나 동생 사이로 규정된 터라 역전은 힘들 걸요.

직접 홈페이지에 은호 역을 마감한 소감을 올렸더군요. 거기서 “은호 역은 정말 행운이라 할 정도로 큰 기회였다”고 했는데, 단지 행운아로만 남지 않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요 연기자로서 행운이 있었던 건 맞아요. 그래도 그 행운이란 걸 잘 잡아낸 건 제 몫이었다고 생각해요. 끝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거든요. 그 ‘진심’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겠죠.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은 반면, 로맨스 장면이 ‘조금 부담스럽다’는 평도 있었는데… 사실, 캐스팅 때부터 간격이 있었죠. 하지원의 첫사랑이란 타이틀에서 장근석은 별로 안 어울린다는 등의.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있었고, 그걸 없애려고 노력했죠. 그런 과정에서 내 방식대로의 진심을 찾은 것 같은데, 평가는 시청자가 하는 거니까요.

‘장근석만의 방식’이란? 자기 안에 있는 과거의 기억을 은호에게 몰입하는 것! 드라마 속 어머니 면전에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야겠다는 이별 멘트를 하는 장면에서는 제게 정말 소중한 어머니를 떠올리느라 눈물이 펑펑 나왔죠. 지원이 누나와 로맨스는 첫사랑의 기억을 자꾸 떠올렸고요(웃음).

본격적인 성인 연기자로 스타트를 끊은 셈이죠. 이에 대해 문근영은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올 거다”며 마인드 컨트롤 중이라고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그런 고민 많았죠. 과연 성인 연기에 어울릴까 하는. 그런데 대학에 가고 스무 살이 되면서 차분해지던 걸요. CF 활동을 한 거고 배우로서 ‘아역’을 시작한 게 아니니까요. 일찍 데뷔한 것뿐이라고, 조급해지지 말자고 다독이죠. 그래도 빨리 나이를 먹고 싶긴 해요(웃음). 눈을 뜨면 이십대 후반이었으면 좋겠죠. 그 나이면 많은 경험을 했을 거고, 배역의 선도 넓어질 것 같거든요.

어떤가요. 머리로 말고 경험주의자가 돼보는 건? 배우란 게 다른 캐릭터를 뽑아내는 일이잖아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무조건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혼자 다닐 때는 차 타지 말고 무조건 걸으라고요. 낙엽 떨어지는 걸 보고 느끼라더군요. 아, 최근에 이병헌 선배가 경험을 쌓기 위해 택시 운전사를 했다는 기사 보고 감명 받았어요. 아르바이트를 꼭 해보고 싶긴 해요. 테이크아웃 커피점이나 자장면 배달하면서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만나고 그 느낌들을 메모리하는 거죠.

중학교 때 CF로 데뷔했죠. 연예인 조기 교육 비슷한 건가요? 어느 순간 됐어요. 그때는 TV에 나오는 자체가 좋았고, 우연히 일하게 됐죠. 그래도 부모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반대를 안 하시고 믿음을 준 게 큰 힘이 됐어요. 제가 외아들인데, 그렇게 믿어주시니까, 되레 그만한 몫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지던 걸요. 그래서 옆길로 새지 않은 것 같아요.
혹시 ‘곱디곱게’ 자란 외동아들? 하하. 어머님이 강하게 키우셨어요. 외아들이면 예쁨 받고 자랐을 거다, 이런 선입견이 있는데, 험하게 자랐죠. 시골에 내려갈 때면 혼자 기차를 타고 내려간 적이 많고. 데뷔 초창기에는 어른들을 만나야 하니까, 어머니가 동행하셨지만, 매니저가 생기면서 다시 혼자 일했죠. 아, 매니저가 있다는 게 그땐 참 신기했는데….

험하게 자랐다는 말을 증명하려면, 더 ‘험한’ 에피소드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지방에서 아버지가 양어장을 하셨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그러다 부모님이 먼저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저는 방과 후에 혼자 짐을 챙겨 버스터미널에 가서 표 끊고 상경했죠. 그런 초등학생 드물지 않나요(웃음). 그렇게 해주신 부모님이 고맙죠. 자립심이 커진 것 같아요.

양어장이라? 유년기의 추억이 클 것 같은데요 서울에서 태어나 6살 때 아버지를 따라 충북 단양으로 내려갔어요. 할아버님이 운영하던 양어장 규모가 커지면서 아버지가 합류한 건데, 온 가족의 사업이 된 거죠. 초등학교 5학년까지 거기서 지냈어요. 아직도 양어장의 추억이 생생해요. 집에서 몇 발짝만 가면 큰 양어장이 있었는데, 향어나 송어, 산천어를 키웠죠. 고기 잡는 게 즐거웠고, 사료 주는 게 제 몫이었는데, 조그만 손으로 사료를 던져주면 고기들이 팡팡 튀는 게 신기했죠. 아버지가 회를 잘 뜨셨는데, 그때 회를 많이 먹어서 피부가 좋은 거 같아요(웃음). 그래도 회 뜨면서 내장을 제거하는 모습이 징그러워서 회는 잘 못 떠요(웃음).

일종의 감성 교육을 받은 셈인데, 상경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된 거죠 어머니의 ‘불타는 향학열’ 때문에요(웃음).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 떠났던 뉴질랜드 유학 역시 어머니의 ‘불타는 향학열’ 때문? 하하, 아뇨. 그 제안은 제가 직접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외국어 배우는 걸 좋아해서요.

영어는 수준급이겠네요 간단한 회화 정도죠. 지원이 누나가 원어민에게 영어 개인 교습을 받는 중인데, 촬영하는 동안 셋이서 영어로 대화하면서 조금 더 늘었어요.

어머니가 전수한 교육의 핵심은 뭐였을까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 “진심은 항상 통한다”라는 말이었죠. 또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인사를 잘 하라고, 얘기를 할 때는 상대방 눈을 보면서 진심을 담으라고 하셨죠.

그래도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요. 그래서 배신을 느낀 적은? 물론 있죠. 나만 너무 진실했구나, 바보 같았어, 라는 생각들. 한때 연예계 활동이 뜸해지면서 힘들 때, 친하던 사람들이 멀어지고, 그런 일들이 있었죠. 그래도 내 진심,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들도 알게 되겠죠.

중학교 때 데뷔했으니 사회생활이 무척 빠른 셈이죠. 그에 따른 부침이 있었을 법한데… 아쉽다면, 학교에 대한 추억이 드물다는 것. 뭐가 좋다라고 하기보다는 양면적이죠. 그래도 내가 하고 싶던 연예계에서 그만큼의 결실을 얻었으니, 후회는 안 하고요. 대개 적절했어요. 중간에 뉴질랜드 유학을 1년 떠나면서 온전히 학생으로 생활을 했으니까요.

평범한 생활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단호하게) 전혀 없어요. 어렸을 때 꿈이 두 개였어요. 가운 입은 모습이 멋있어서 의사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배우가 제 일인 거 같거든요. 과 친구들을 보면 사회에 나가 정말 뭘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걸 남보다 일찍 발견해서 다행인 걸요.

의사 역시 어머니의 향학열 때문(웃음)? 아뇨. 드라마 ‘종합병원’의 영향력이 컸죠. 새벽에 씻지도 않고 선잠이 들었다가, 호출기 울리면 눈곱 떼고 나가면서 환자 살리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죠. 그런 열정이 부러웠죠. 여담인데요. 제 사주에 의사와 연예인 사주 2개가 있대요(웃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웃음).

8월이 생일이던데, 스무 살 생일은 어떻게 보냈어요 오히려 덤덤하게요. 이전엔 요란한 파티도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 조용하게 보냈어요. 절친한 중학교 동창 4명이 있는데, 그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죠. 펜션을 구해 머물면서 바비큐 파티도 하고, 웨이크보드도 탔죠.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 어렸을 때 진심을 느낀 친구들과 우정을 이어간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흔히 스무 살은 상징적인 나이로 통하죠. 그 시기를 관통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게 아니더라도 어느 시점인가, ‘인생’이 무척 궁금했고 고민했던 적이 있다면? 그동안은 시쳇말로 잘 ‘놀았죠’. 그렇다고 ‘날라리’과는 아니었고요.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밤새 영화를 제작하고, 그렇게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던 시기였죠. 진정한 배우가 되려면,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스무 살이라고 특별히 고심한 바는 없지만, 그래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했어요. ‘인생’을 고민했던 시기는 ‘논스톱’을 마치고 나서였던 것 같아요. 당시 함께 출연했던 MC몽이나 현빈 형들은 이후 스타가 됐는데, 전 주춤했거든요. 그러면서 ‘간격’이 벌어지고, 내가 연기는 제대로 하는 건가, 하는 자책에 빠졌죠. 힘들었는데, 노력하면 진심이 통한다며 마인드 컨트롤 했죠.
한동안 장근석은 ‘애어른이다’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는데, 알고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잖아요. 당시 같이 활동하는 형이나 누나들이 나이 차가 커서, 어린 마음에 빨리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어른 말투나 행동을 모방하게 되고. 애 취급 받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기 싫어요. 이젠 ‘애어른’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 나이대에 맞는 추억과 경험은 따로 있잖아요. 일반인 장근석으로 보면, 스무 살의 지금이 최고 좋은 듯해요. 형들과 함께 술 마시고 밤새 게임을 해도 체력적으로 앞서 나가는 게 득이더라고요(웃음).

엉뚱한 질문 하나. ‘장근석 2세’가 생긴다면 어떻게 가르칠 생각이죠 의사를 만들래요(웃음). 안정적인 직업이잖아요. 그때 되면 부모님과 사고방식이 닮을 듯해요. 부모님께서도 연예계 활동에 반대를 안 하셨지만, 내심 안정적인 직업을 바라셨겠죠.

그래도 ‘장근석 2세’가 연예인이 되겠다는 선언을 하면? 난 좋은데 자식은 시키고 싶지 않은 걸요(웃음). 그런데 진심으로 ‘배우’를 하겠다면, 어머님께 배운 대로 ‘진심’으로 응원해줘야겠죠.

대학 생활 얘기를 잠시 나눌까요. 미팅은 딱 한 번 했다던데… 연예인이란 위치, 내 멋대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그래서 부모님과 매니지먼트 사무실에 허락받고 딱 한 번만 한 거죠. 커플로 맺어지지도 않고, 전화번호 교환도 못했어요. 난 편했는데, 상대방 친구들이 불편한가 봐요. 그 친구들이 묻는 말이 “미팅해도 돼요?” “스케줄 없어요?”, 이런 식이죠. 서운하게도, 호기심의 대상인 거죠.

다시 한 번, 평범한 생활에 대한 미련이 없나요 가끔씩 평범한 추억이 그립기도 하죠. 그래도 정말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것까지 누렸다면 지금의 장근석이 없을 테니까요. 절대 후회는 없고요. 잃은 게 있으면, 얻은 게 있다는 믿음!

지금, 꽤나 어른스러운 거 알아요? 하하. 마음고생이 있었을 때 배운 거예요. 나서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자고. 겸손하자고, 미래에 대해 충실하자고요.

현재 여자친구는? 지금은, 음, 관심이 가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모를 걸요.

지난해까지 연상의 여자 탤런트와 연애 중이란 소문이 돌았는데… (눈이 커지며) 전혀 아닌데요. 연예인과 사귀거나 그런 추억은 없어요. 제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탤런트 누나들 휴대폰 번호 물어보는 건 걸요. 그거 정말 못 하겠어요. 먼저 못 다가가는데다, 가까워지는 걸 중단시키는 단점이 있죠. 제가 나이가 어리고, 어쩌다 누나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보고 그런 소문이 나온 건 아닐까요.

장근석은 ‘이런 청년이다’를 보여주는 물건 하나를 소개한다면… ‘자동차’요. 의사와 연예인, 그 꿈들을 갖고 있기 훨씬 전에 카센터 사장이 되고 싶었거든요. 스무 살이 되면서 부모님께 ‘첫 차’를 선물 받았어요. 제 나이대에 비하면 너무 좋은 차인데, 엔진 소리, 둥근 바퀴 그런 게 너무 좋아요(그는 이세창, 류시원 등이 속한 연예인 레이싱팀 RStars의 멤버다).

차에 빠진 남자랑 사귀지 말라는 얘기가 있어요(웃음) 하하. 레이싱 팀 선배들도 그런 말을 해요. 뭐 하러 애인 만드냐고, 선물 사주고 돈 많이 들고 귀찮다면서요(웃음). 그 정성 들여도 여자와 헤어질 수는 있지만, 차는 돈 들일수록 바퀴가 커지고 멋있어진다는 논리죠. 아, 그래도 연애하고 싶다~.

일전에 유방암 계몽 캠페인 행사에 참석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알았는데요. 남자도 유방암에 걸릴 수 있대요. 취지가 좋고, 그런 행사들이 대중화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연예인이 하면 홍보가 더 잘 되잖아요. 그 몫을 담당하고 싶은 거죠. 고등학교 때부터 크리스마스가 되면 온 가족이 장애우들을 찾아가 작은 선물을 전해주고 오거든요. 그 따뜻한 느낌이 좋아요. 올 초에 영화 ‘착신아리 파이널’을 하면서 청각장애인 역을 맡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고 답답한지 알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수화를 꾸준히 배웠는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 이십대 초반에 안 하고 넘어가면 후회할 것 같은 하나를 꼽아 달라면… 음, 너무 많은데요. 그래도 아르바이트요. 서빙을 하고, 자장면 배달도 하면서 평범하게 사람 만나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아,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연애죠(웃음).


황진이의 첫사랑 장근석
독점인터뷰 1편

황진이로 다시 태어난 장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