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대로 끄적 끄적

닭죽과 완두콩 소동

아름다운 안해 2007. 5. 31. 00:58

 

 

어젯 저녁 다섯시쯤일이다.

솥에선 아직 덜 자란 닭 두마리가 고기가 되어 팔팔 끓고 있다.

 

아이 아빠가 늦더라도 셋이서라도 먹자며 벼르던 닭죽을 끓이려던 참이였다.

이제 찹쌀도 넣었고 녹두대신 넣으려고 완두콩도 파랗게  씻어 두었다.

 

 

 

 

 

그때 귀신 같은 우리 큰 아들이 숙제하다 말고 큰 소리로 묻는다.

엄마! 혹시 닭죽에 완두콩 넣는 건 아니겠지? 나는 뜨끔 했다.

몰라.

넣을거야?

몰라

지금 넣었어?

아니.

그럼 절대 넣지마~!

 

 

나는 몰라만 연발하고선 손 절구를 얼른 꺼냈다.

별수 없다, 맛난 완두콩을 또 빻아야 겠다.

얼마전부터 빻아서 밥에 넣었더니 모르고 먹던 모습을 생각하며 난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한참 빻고 있는데 귀신 같은 아들이 갑자기 냉큼 달려온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손바닥으로 절구속을 가렸다.

 깔깔.엄마 왜 가려?

그러면서 내 손을 떼어 내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들키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아예 방아를 뒤로 숨기며 빨리 가라고 했다.

그렇다고 갈 아들이 아니다.

 

 

 

엄마,웃긴다. 왜 내가 보니까 방아를 멈추어?

아들이 허연 대문 같은 앞니를 드러내고 허허거리며 우스워하면서 계속 얼쩡거린다.

아들은 민속 마을에서나 절구통을 보았고 방아찧는 이야기는 동화책에서나 읽어서인지

3학년인데도 내가 빻고 있는 것을 방아 찧는다고 표현했다.

아기 같은 표현이 귀엽다.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기어히 내 방아를 뺏어서 자기가 찧기 시작한다.

다행히 아무말도 안하고 신나게 찧는다.

엄마! 가루로 만들어줄까?

더 신나게 죽이 되도록 빻는다.

나는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완두콩을 보았어도 그것을 어디에 쓸건지 아무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웬만큼 빻아진 후에 넘겨받았으니 완두콩인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귀신 같은 우리 아들. 잘게 빻아진 콩 쪼가리 가득 담긴 손 절구를 내밀며 하는 말.
.근데 엄마 이 완두콩 빻은 것 어따 넣을거야?

“….!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혹시 엄마! 이거 닭죽에 넣으려고 하는거 아니야?

나는 또 '몰라' 작전을 펴며 가서 하던 숙제 하라고 짐짓 혼내는 척 했다.

쉽사리 가지 않고 캐 묻던 녀석이 아직도 입가에 개구진 미소를 띄고 가 앉는다.

나는 승리의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완두콩 빻은 것을 붓고 팔팔 끓이면 색이 누렇게 변색되어 그 흔적도 알 수 없으리라.

 

 

드디어 연한 닭고기 먹기가 끝날 즈음 나는 솥에 가서 보고 눈동자를 몇번 굴렸다.

어라?

끓는 죽에 넣었더니만 콩 쪼가리들은 아주 새파랗게 새싹처럼 죽속에서 폴짝 거린다.

 

 

결국 아이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죽 그릇을 분배하자 마자

큰 아들 녀석이 하하 박장 대소하며 한마디 한다.

완두콩이다! 역시나 그 완두콩을 여기에 !

그래.그 고소하고 달콤한 완두콩을 너희가 안 먹으니까 이렇게 맛 없게 빻아서 넣었다.

밥에도 이렇게 맨날 넣었는데 모르고 먹었다.

나는 안 먹는다고 할 까봐 이미 모르고 먹어왔다는 사실만 강조했다.

사실 빻아 넣기 전에는 아이들이 어르고 별러도 완두콩을 식탁에 발라놓기가 일쑤였었다.

마치 허연 밥풀 붙은 완두콩들을 보면 식탁이 백설기 조각들로 보였다.

 

하지만 의외로 큰 아이는 연신 깔깔거리며 닭죽을 두 그릇이나 먹고 작은 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고,이번 전쟁은 아이들이 선심 쓰고 져 주어서 또 즐거운 전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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